738화 꿈의 나라로 오세요! (1)
“박하율이라고요?"
“네. 그러니까요. 제가."
마리가 나를 확 잡아당겨 귓속말을 했다. 스탯 안 떨어진 건가 힘이 세네. 통역 아이템도 사용할 수 있는 듯하고. 결이와 비슷한 케이스인 걸까.
“박하율의 꿈이에요."
“..…예?”
마리의 설명에 의하면 박하율은 초승달과 연관된 존재인 듯했다. 강력한 정신계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가 꾼 꿈이 현실화된 것이 마리라고 하였다. 그런데 마리가 꿈에서 벗어나 현실에 발을 디디면서 현실인 박하율이 대신 꿈이 되어 이 세계의 중심이 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
'... 박하율이 초월자의 씨앗이라고?'
그, 초승달이 심은 멸망의 씨앗? 우리 세상을 삼키기로 예정된 초월자가 박하율? 걔가? 정말로?
'사람을, 쉽게 판단해선 안 되지만... 평범한 사람도 놀라운 일을 해낼 수도 있다곤 하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약간 멍청한 듯 해맑게 웃는 박하율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 뭐, 초월자라고 해서 대단한 건 아니긴 했지. 이상한 변태도 있었고, 아니그래도 박하율이냐. 생각해 보면 정신계 스킬 효과가 너무 뛰어나긴 했지만 얼굴로 플러스되기도 해서……아무튼 박하율이라고? 진짜로? F급 스탯 가지고 초월자도 잡은 내가 이러는 것도 웃기지만 그래도 진짜냐.
'세상에... 박하율이 내 마지막 희망이라니.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나마 그놈이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라 해야 할까. 많이 엇나가다 못해 좀 미친 것 같은 호감이었지만.
“그, 박하율은………….”
"프랑스 알프스 근처에 있을 거예요. 마지막에 있었던 장소가 거기였댔거든요. 제가 느끼기에도 그런 것 같아요."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마리 씨가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충격적인 사실이 뒤통수를 치는 바람에 미처 꺼내지 못했던 안부를 물었다. 사미르도 괜찮냐는 말에 마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회로 문제로 포션도 못 쓰고 입원 중이지만 성녀님이 푹 쉬면 나을 거랬어요. 어머니께서 병원으로 꽃바구니를 보내왔고, 한유진 님과 연락 방법 찾으려고 한국으로 출발했거든요. 아, 런던이 원래대로 돌아왔어요!"
그러니까 대충 런던이 원상복귀되면서 성녀님 측이 그와 관련 있을 우리 일행과 연락하려고 시도 중이었던 듯했다. 그러다 마리가 꿈의 세계를 빠져나오면서 합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아 씨도 나타나면서 다같이 한국에 모여 있었다고 하였다.
마리에게 사정을 듣는 사이 익숙한 얼굴들이 옥상 위에 가득 찼다.
“피난 온 헌터들이 몇 차례 소란을 일으키긴 했으나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긴 시간 자리를 비워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송 실장님은 각관실에서 온 헌터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일을 떠넘겨 미안해하는 송 실장님과 마주머리를 꾸벅 숙인다. 그 옆으로 김성한과 예림이 팀 소속 헌터도 보였다.
“제가 팀장인데! 미국 갔다가 금방 돌아갈 줄 알았거든요!"
"그러게요! 우리 팀장님 이렇게나 오래 던전 못들어가실 줄은 몰랐네. 그사이 블루가 한몫 단단히 하고 있어요."
예림이 팀은 예림이가 없는 사이 블루와 함께 던전을 공략하고 있었다. 해연 길드원들 중에서는 예림이네 팀원들이 가장 블루와 잘 맞는 모양이었다.
“미국 지부 건은 석시명 인사팀장이 예정대로 진행중입니다만 월말로 잡힌 상급 헌터 면접은 미루어졌습니다. 상급 길드원은 길드장님께서 직접 확인하셔야 할 필요가 있을뿐더러 가능하면 한유진 소장님께서도 참석하시길 바란다 전해왔습니다."
"상급은 도담에 파견되는 일이 잦으니 혐의 의견도 참고해야겠지. 사육소와의 관계를 보고 해연에 들어오길 원하는 헌터들도 많을 테고."
김성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채터박스 파티 이후로 길드가입을 희망하는 헌터들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특히 해외헌터 비중이 상당하다고 하였다. 석시명이 미국 지부를 만들게 되면 거긴 해외 헌터 위주가 되려나.
“길드장님이 감기 걸렸다니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다들가기 꺼려서 어쩔 수 없이 - 귀! 꺄악!"
강소영이 성현제의 사라진 귀를 보곤 비명을 질렀다. 주위 다른 사람들도 뒤늦게 눈치채곤 당황해했다.
“송 실장님과 싸우다 손가락 부러진 적은 있었어도 어디 잘라먹은 건 처음이에요! 세상에!"
은근 잘 다치던데. 나도 머리에 총 쏴봤었고, 성현제가 보란 듯이 기침을 했다. 강소영이 귀신이라도 본표정으로 크게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꿈에서도 보고 싶지 않았는데!"
“강소영 헌터, 보고."
“앗, 네! 길드장님만 내도록 자리를 비우셨지만 아직은 별문제 없습니다. 후계자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고 있지만요.”
어쩌다 보니 성현제는 계속해서 길드를 내버려둔 셈이 되어 버렸지. 실제로는 우리 세상에 제일 오래 머물러 있었지만 조그맣게 변하는 바람에. 그보다 웬 후계자. 소영 씨 말인가.
"한결 군이겠군."
"네. 아무래도요. 게다가 이미 각성자에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고 도담과 성녀님을 비롯한 인맥 역시.."
“우리 결이 세성 안 갑니다!"
뭐라는 거야! 성현제가 고개를 느릿이 기울이며 나를 돌아보았다.
“세성 길드라네."
"그러니까"
“이야기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한결 군의 자리는 굳건해지겠지."
"그.....
솔직히 세성은 결이에게 크게 도움이 될 배경이었다. 물론 나도 애 하나 지킬 능력은 되지만 돈과 권력은 많을수록 좋은 게니던가. 나중에 결이가 세성 길드먹고 싶어 할 수도 M % 성현제 개인 재산만 해도 엄청날 텐데, 전에 뭐랬더라, 투자해서 성공한 곳도 있댔지.
“아무튼 결이가 결정할 일이니까 소문 이상의 확정적인 행동은 삼가 주십쇼. 소영 씨도 부탁드려요."
"걱정 마세요! 그래도 법적으로 도장 찍는 거 생각은 해보세요. 당당하게 우리 길드장님 뜯어먹을 수 있게 된다고요. 일단 양육비 청구부터 하시는 거예요. 각성자에 전룡화 가능한 특이 케이스니까 이것저것 붙이면 짭짤할 거라고 법무팀장님이.."
아니 소영 씨 어디까지 알아보신 거야. 양육비 운운에 내가 소홀했다면서 미안한 척을 하는 성현제에게 나도 돈 많다고 딱 잘라 끊어냈다. 그러는 사이에도 사육소 주위에선 폭음이 끊이질 않았다. 몬스터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가 눈 녹듯이 사라지길 반복한다.
"한 소장!"
시시오가 나를 향해 두 팔을 크게 벌리며 다가왔다. 그 뒤쪽으로 경훈이 형이 보였다. 위험, 하다기엔 그냥 꿈이니까 괜찮은 건가. 성큼성큼 걸어 온 시시오가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공손하게 인사했다. 아… 한국어 배우셨구나.
“건강합니까. 한 소장."
“네, 멀쩡해요. 아직 한국에 계셨던 거예요?"
“하이. 잘 있습니다."
알아듣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방긋거리며 어설픈 존댓말을 쓰는 모습이 미쳤나 싶게도 아주 조금 귀여워보였다. 칭호 부작용인가. 그간 정이 많이 들어 버려서 그래.
"무섭군요."
경훈이 형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거대한 달이 드리운, 몬스터로 가득한 하늘. 던전의 비현실성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등골이 서늘해질 광경이었다.
“여기까진 어쩐 일이세요."
“당연히 와야지요. 도담에서만 빠질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나를 향한 눈빛에도 목소리에도 탓하는 기색이 서려있었다.
“한유진 사육소장님."
“아, 네. 그렇죠. 물론."
경훈이 형이 석시명에게 물이 좀 든 거 같단 말이야. 도담 사육소는 세계 유일의 기승수 전문기관으로서 사육소장인 나 또한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같은 느낌이랄까. 틀린 행동은 아니지만... 석시명이 그 옆에서 열심히 부채질도 하는 모양이었다. 경훈이 형이 크게 한숨을 내쉬곤 나를 안타깝게 바라봐왔다.
“왜 소장님께서 몸으로 직접 뛰어다니셔야 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하하··· 그러게요.”
“사육소 내에서의 일도 넘쳐납니다. 굳이 바깥으로 나가실 필요 없이 방문 요청도 일 년 치 이상 쌓여있고요.”
어째 사육소에다 가둬 두겠다는 말처럼 들리는 거 같은데. 내가 너무 나돌아 다니기는 했지.
“이거 쓸쓸한데. 진아, 나 좀-.”
자기 혼자 외톨이라며 내게 슬금슬금 달라붙으려는 황림의 아래턱을 유현이가 검집으로 콱 찍어 버렸다. 황림이 턱을 움켜쥐며 눈물로 호소해 왔지만 무시했다.
“한 소장,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창백한 달 표면을 올려다보며 문현아가 물었다. 몬스터는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다. 여기 머물러
버티기보다는 역시.
"알프스로 가야죠."
박하율과 접촉을 시도해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박하율이 아직 자아를 유지하고 있다면 잘 설득해초승달을 막을 수도 있을 테니까.
“저희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니 헬기 이동은 위험해요.그렇다고 육로로 가기엔 너무 멀죠."
“일단 비행기가 무사히 이륙만 하면 몬스터의속도로는 쫓아오기 힘들 거야. 공항으로 가자. 지원군을더 불러낼 수 있을 듯하거든."
문현아가 마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마리가 크게고개를 끄덕였다.
“저나 결이가 도와줄 때만큼 선명하진 않아도요.자각몽만 꾸면 되거든요. 그냥 꿈을 꾸는 사람들도우리들은 인지하지 못해도 한유진 님 일행은 도와줄 수있어요!"
“한소장이 결이를 통해 말해 준 것처럼 말이야."
나는 이미 꿈꾸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었다. 그리고우리 세상에는 꿈을 꿀 수 있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럼 공항으로 출발할까. 아래 쪽 정리하고 줄사다리이쪽으로!"
문현아의 외침에 헬기용 줄사다리가 사육소 벽에걸쳐졌다. 김성한과 시시오가 앞서 벽으로 다가간다.강소영도 가볍게 벽 끝으로 올라서며 총을 만들어 내어몬스터를 향해 쏘았다.
“꿈에선 안 죽으니까 감기 걸린 길드장님은 제 보호를받으세요~"
"우리 소영이가 다 컸군."
"가시죠, 소장님."
"어, 서 팀장님께선 먼저 돌아가시는 편이 낫지않을까요."
“던전 공략 경험은 없지만 군대는 다녀왔습니다."경훈이 형의 손에 낯익은 소총이 들렸다. 줄사다리를타고 앞서 아래로 내려가는 움직임도 생각보다 날랬다.피스는 줄로 묶어 내리고 나머지 사람들도 무사히옥상에서 벗어났다. 헬기들이 다시 날아오르며전투기들과 합세해 몬스터를 요격한다.
"이쪽입니다! 군용트럭을 준비했습니다."
“실장님, 물러나 계십시오!"
“지금은 저희가 보호해 드릴 차례입니다. 꿈이니까걱정 마십시오!"
각관실 헌터들이 유독 신나하며 외쳤다. 송실장님은조금 복잡한 표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그들의보호를 받았다. 비상시에 탈출하기 쉽도록 천장이 없는트럭 뒤쪽에 올라탔다. 헌터들이 방패를 든 채 주위를경계하고 장갑차들이 트럭을 에워쌌다.
도로를 따라 공항으로 출발하자 진득한 달빛이 우리를뒤따라왔다.
- 카르르!
머리 위로 바로 내리꽂히는 달빛 사이로 몬스터가 고개를 내민다. 내 옆에 앉아 있던 피스가 단숨에 몬스터의 머리를 물곤 트럭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달빛에서 바로 튀어나옵니다! 조심하세요!"
화력은 분명 앞섰다. 하지만 몬스터는 말 그대로 무한했다. 헬기 한 대에 몬스터들이 집중적으로 달라붙기 시작했다. 결국 추락한 헬기가 콰앙, 요란한 폭음과 함께 화염에 휩싸인다. 지상 또한 마찬가지였다.
“..…미친.”
헌터 하나가 도로를 새까맣게 뒤덮는 몬스터를 보고 낮게 중얼거렸다. 무시무시한 숫자가 밀어내자 장갑차도 쉽게 속도를 내질 못한다. 그때였다.
쿵!
트럭 하나가 달려오더니 몬스터들을 들이받는다. 이어 오토바이 소리도 들려왔다.
“진짜 있어!”
“악, 징그러워!”
끼이이익, 오토바이가 몬스터와 충돌하며 길게 미끄러졌다. 굴러 떨어진 사람이 커다란 도끼를 들고 마구 휘둘러 댄다.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저기 예림이 있다! 예림아!"
“우와, 박예림! 야!"
여자아이들의 목소리에 예림이가 기겁하며 벌떡 일어났다.
"뭐야! 너희들 왜 여깄어!"
“나 원래 자각몽 잘 꿰! 꿈에서 몬스터 많이 잡아봤거든!"
그 말대로 예림이 친구의 손에 바주카포 같은 것이 들렸다. 예림이가 어이없어하면서도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예림이를 외치는 소리들에 이어 길드장님을 외치는 소리도 섞여들었다. 해연 길드 쪽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사육소 빌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실제 몬스터와 같은 건가요? 하늘의 저건 뭐죠! 기록 남겨야 하는데!"
석하얀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연 길드원들이 등급 고하며 각성 유무를 막론하고 몬스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차막혀!"
“바이크가 최고다!"
“누가 지하철 운행 중이라고 밖에 전해 줘라!"
“송 실장님 사랑해요!"
"피스야아아아!”
수적으로 유리하던 몬스터가 밀려나기 시작했다. 온갖 무기가 마구 휘둘러지고 우리를 위한 길이 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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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몽 쉽게 꾸는 방법, 무엇이 있을까요?]
[현재 한유진 위치]
[꿈속에서 공간이동, 이렇게 하면 된다]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무기 목록 베스트 10!]
[당신도 몬스터를 잡을 수 있다]
[김포국제공항 가는 길]
[자각몽 가능한 지하철 운전사 급구!]
[단체 자각몽 시도할 헬기 조종사 모집합니다]
긴급 속보 꿈의 세계가 방송된 직후, 수많은 글과 영상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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